-C/keith

3. 창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다.

Cur 2017. 3. 20. 22:30

-사라진 너와 나의 오후는 어디로 갔나.-




창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다. 





학교의 돌담은 그 벌어진 틈새에 습기를 머금었는지 오래된 흙냄새와 먼지 냄새를 풍겼다. 어두운 오후, 음악실로 이어진 복도의 풍경은 바깥과 구분이 없는 어두운 오후였다.



“…비 오는 날은 연습하기 싫은데.”



사람도 몇 없는 합창부를 위해 학교에서 담당 악단을 꾸려줄 리 만무하지. 때마침 들어온 심포니가의 학생은 여러모로 쓸모가 많다는 얘기다. 이러려고 들고 온 플루트는 아니지만, 선생님의 간곡한 부탁을 거절할 만한 이유도 딱히 없으니… 이렇게 혼자서 음악실의 문 맞은편, 애꿎은 창가만 노려보고 있는 거다. 





“…에휴.”


영 마음에 드는 상황은 아닌지라 한숨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문을 열고, 문을 닫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손깍지를 끼고 기지개를 폈다. 으-아! 이 정도 했으면 됐겠지? 익숙하다면 익숙하게, 플루트를 분리하고- 닦아내고- 눅눅한 음악실의 공기를 멍하니 바라봤다. 아까까진 그래도 소리가 가득했는데, 벌써… 아무것도 없구나. 



“…여기도 나 혼자네.”



자조의 웃음이 입가에 피었다. 낡은 의자 위에서 아이처럼 발을 앞뒤로 왔다 갔다 움직이며 가만히 놓여있었다. 지금 앉아있는 의자와 내가 다른 게 뭐가 있을까. 그렇게 연식이 오래된 물건들 사이, 덩그러니 놓인 슬러 A. 심포니는 점점 지워지는 자신의 숨소리에 덜컥, 겁이 났더랬다. …빠르게 케이스를 집어 들고, 음악실의 문을 열었다.





창밖에는 아직 비가 내리고 있다.  



-사각 사각 사각


습기 찬 돌담의 창가 앞, 커다란 그림자 같은 사람이 서있었다.





“…키스?”



숨소리가 들렸다. 네 소리도 들렸다. 사각 사각 사각-. 너는 내가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했는지 여전히 손안에 들린 수첩을 낮게 바라보고 있다. 어두운 오후, 볕도 없는 창가에서 너는 그렇게 소리를 내고 있었다. 잘게 떨어지는 빗소리에도 지워지지 않는 확실한 너의 소리. 


살며시 돌담 벽 가까이로 다가갔다. 물끄러미 올려다 본 네 얼굴은 어두운 오후. 너는 정말 그 까만 글자 속에서 무엇을 보고 있는 거야? 사각 사각 사각-. 너의 대답은 영 알아채기가 어렵다. 나는 내가 사랑하고픈 사람처럼 그렇게 머리가 좋지 않아. 그대로 주저앉아 벽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나른한 늦은 오후, 음악실로 이어진 복도의 풍경은 혼자 남은 음색보다 분명한 필기 소리가 바깥과 안의 틈새에 확실한 선을 그은 듯했다. 비 오는 날의 낮 그림자가 아마도 내 위에 드리워 눈을 감았을 뿐인데 현실감은 단 한 박자도 남아있지 않더라. 





“슬러? 언제 왔어? ……슬러, 자?”





탁-, 종이와 종이가 폭신하게 닫히는 소리. 다정하고 아쉽고 서글픈-. 키스 해밀턴은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으로 조용히 제 발치에 눈을 감고 앉은 슬러 A. 심포니를 내려 보았다. 어느새 허리를 푹 수그리고는 피식, 또 그 다정한 웃음을 지었다지.



“…이런 데서 자면 감기 걸린다, 일어나-. 슬러.”

“으음….”


이럴 때아니면 언제 찔러보겠어? 무얼 말하고 싶은 건지 웅얼거림이 가득 담긴 볼을 손으로 쿡, 한번 찔러보는 거지.



“…키스, 글 다 썼어?”



아직 잠이 덜 깼는지 슬쩍 떨어진 손가락, 손등에 그대로 얼굴을 비비며 눈도 다 뜨지 못한 채로 물었다. 나중에 기억이나 하려나? 키득키득 웃으며 또 평소처럼 그 작은 머리 위에 손을 얹고 부드럽게 헝클었다. 



“지금 몇 시지?”

“음, 글쎄? 슬슬 밥 먹을 시간이 된 것 같은데?”



“…키스의 배꼽시계는 아마 정확할 테니까, 믿어도 되겠지?”

“하하, 빨리 가자. 오늘 메뉴는 좀 괜찮은 모양이야.”


내밀어 준 손을 잡고, 팔을 쭉- 뻗어 기지개를 폈다. 잡은 채로 폈는데도 네 팔은 그다지 올라가지 않았지. 어쩐지 익숙한데 괜히 심술이 나니까, 괜히 가슴 언저리를 툭 치고선 아마도 시끌벅적할 연회장을 향해 뛰어갔다.





창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낮보다 확연한 색을 띤 푸른빛의 하늘, 음악실로 이어진 복도에는 오후의 그림자도, 오도카니 남은 플루트의 음색도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덩그러니, 돌아본 그곳에 홀로 남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