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 제 글을 써,볼까 생각 중 이에요." 여러 번 깜빡이던 속눈썹아래 그림자가 드리었다. 한델과 키스가 앉아있던 창가자리에 햇빛이 가득 들어찼기 때문이다. 음식이 반 정도 남은 새하얀 접시가 대신 대답이라도 하듯 반짝반짝 빛났다. 다른 건 몰라도 키스 앞에서 펜을 잡는 것만은 여간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던 한델인데…, 나눠 잡은 수첩 한 글자, 단어, 문장을 눌러쓰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그러던 한델이 둘만의 속삭이는 이야기에 멈추지 않고 작가로서의 삶을 새로이 시작한다 말한다. 키스는 나이프와 포크를 쥔 양 팔을 느리게 내려놓았다. "행사 초대…도, 이제 거절할 생각이에요. … … 키스, 옆에… 자신, 있게 서 있을 만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 한델, 글 쓰는 거, 힘들어하지..
-사라진 너와 나의 오후는 어디로 갔나.- 창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다. 학교의 돌담은 그 벌어진 틈새에 습기를 머금었는지 오래된 흙냄새와 먼지 냄새를 풍겼다. 어두운 오후, 음악실로 이어진 복도의 풍경은 바깥과 구분이 없는 어두운 오후였다. “…비 오는 날은 연습하기 싫은데.” 사람도 몇 없는 합창부를 위해 학교에서 담당 악단을 꾸려줄 리 만무하지. 때마침 들어온 심포니가의 학생은 여러모로 쓸모가 많다는 얘기다. 이러려고 들고 온 플루트는 아니지만, 선생님의 간곡한 부탁을 거절할 만한 이유도 딱히 없으니… 이렇게 혼자서 음악실의 문 맞은편, 애꿎은 창가만 노려보고 있는 거다. “…에휴.” 영 마음에 드는 상황은 아닌지라 한숨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문을 열고, 문을 닫았다. …시간이 얼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