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왕궁의 서쪽 복도 끝에는 기숙사로 올라갈 수 있는 유일한 나선 계단이 있었다. 이는 왕궁 사람들 중에서도 아주 소수만 알고 있는 사실로, 평소에는 오래된 나무의자 하나와 커다란 베이지색 커튼이 그려진 유화그림이 멋들어진 나뭇잎 장식이 새겨진 액자에 걸려있을 뿐, 작은 생쥐 한 마리 지나갈 구멍조차 없는 평평한 벽만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아…." 곧장 복도 끝을 내달리던 아이는 그 커다란 유화그림 앞에 멈춰 서서 천천히 숨을 고르다가 품에서 하얗고 긴 막대기 하나를 꺼내었는데, 하늘색 손잡이 부분에 줄기가 올라가듯 금색 장식이 양각으로 튀어나와있었다. 아이는 막대기를 살짝 그러쥐고 그 끝으로 그림에 드리워진 커튼을 천천히 들춰냈다. 그러자 유화 속 그림이 막대기 끝을 따라 부드럽게 움직이더..
◆ ◆ ◆ ◆ 복도는 조용했다. 아이의 발소리를 제외하면 C반과 B반을 지나갈 때야 작게 울려퍼지는 조근조근한 말소리 외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왕국에 마법학교를 세운지 50년이 넘어간 후 부터 극도로 예민해진 왕이 왕궁 내 인원을 줄이고 궁 내에서 교양없이 떠들거나 소란을 일으키는 자에게 엄벌을 내린다는 말이 나돌았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아이는 지금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이 조용한 복도에 자신이 얼마나 어울리지 않는 존재인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아이는 생각했다. 도망치는 곳 또한 왕궁을 벗어나는 건 아니였으나 꼭 자신에게만 보이는 것처럼 아무도 찾지 않고 정리되지 않은 장소가 너무나도 간절했다. 뭐 하나 바뀌지 않는 장소. 그곳에 문을 열고 들어가서야..
◆ 국왕은 그가 쓰는 신비한 힘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오…! 오……! 하는 말밖에 내뱉지 못하면서, 그를 바라보는 눈에는 넘쳐흐를 만큼의 수많은 말들을 꾸역꾸역 담아냈다. 반들거리는 금빛 의자의 손잡이 위, 힘없이 늙은 손이 바들바들 떨리었다. 감히 자신의 앞에서 저토록 태연한 이질적인 존재를 어떻게든 붙잡고 싶은 걸 가까스로 참아내는 눈치였다. “폐하, 내기를 하나 할까요?” 키스 C. 해밀턴은 저 탐욕스런 속내를 맞춰주면서 자신이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을 기다렸다는 듯 꺼내었다. 아마 저 지저분한 늙은이의 시선에서 가능한 한 빨리 벗어났으면 했기 때문일 것이다. “내, 내기? 내기라니, 무슨 내기 말이냐?” 국왕의 몸이 휙, 앞으로 튀어나가듯 기울었다. “제가 이 곳에 온 이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