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바람은 불고 싶은 대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영에서 태어난 이도 다 이와 같다. 요한복음3장 8절.- - 갑자기 뭔 소리래? - …굉장히 뜬구름 잡는 소리네요. - …너 말고 멍청아. - 와, 또 멍청이래. 여기 와서 한 거 없이 멍청이만 몇 번째지? - 그럼 저요? - 그래. 너도 똑같다고. - …전 수수께끼보단 앞뒤 있는 소설 쪽이 더 좋은데, - 미련하게 굴지 말고 갈길 가란 소리야. …기회 있을 때 제발 좀 꺼져. - 그래~ 나처럼 다시 끌려오지 말고! 수도회 밖으로 뻥! 차였을 때! 그때 아주 꺼지라는 말이지! 크큭!! - …시끄러워서 도저히 신문을 못 읽겠군. - …그냥 다 뒈져라, 멍청한 새끼들. 2 . [안식과 평화가 항상 그대와 함께하길..
◆ ◆ ◆◆◆ 왕궁의 서쪽 복도 끝에는 기숙사로 올라갈 수 있는 유일한 나선 계단이 있었다. 이는 왕궁 사람들 중에서도 아주 소수만 알고 있는 사실로, 평소에는 오래된 나무의자 하나와 커다란 베이지색 커튼이 그려진 유화그림이 멋들어진 나뭇잎 장식이 새겨진 액자에 걸려있을 뿐, 작은 생쥐 한 마리 지나갈 구멍조차 없는 평평한 벽만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아…." 곧장 복도 끝을 내달리던 아이는 그 커다란 유화그림 앞에 멈춰 서서 천천히 숨을 고르다가 품에서 하얗고 긴 막대기 하나를 꺼내었는데, 하늘색 손잡이 부분에 줄기가 올라가듯 금색 장식이 양각으로 튀어나와있었다. 아이는 막대기를 살짝 그러쥐고 그 끝으로 그림에 드리워진 커튼을 천천히 들춰냈다. 그러자 유화 속 그림이 막대기 끝을 따라 부드럽게 움직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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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복도는 조용했다. 아이의 발소리를 제외하면 C반과 B반을 지나갈 때야 작게 울려퍼지는 조근조근한 말소리 외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왕국에 마법학교를 세운지 50년이 넘어간 후 부터 극도로 예민해진 왕이 왕궁 내 인원을 줄이고 궁 내에서 교양없이 떠들거나 소란을 일으키는 자에게 엄벌을 내린다는 말이 나돌았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아이는 지금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이 조용한 복도에 자신이 얼마나 어울리지 않는 존재인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아이는 생각했다. 도망치는 곳 또한 왕궁을 벗어나는 건 아니였으나 꼭 자신에게만 보이는 것처럼 아무도 찾지 않고 정리되지 않은 장소가 너무나도 간절했다. 뭐 하나 바뀌지 않는 장소. 그곳에 문을 열고 들어가서야..
◆ 국왕은 그가 쓰는 신비한 힘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오…! 오……! 하는 말밖에 내뱉지 못하면서, 그를 바라보는 눈에는 넘쳐흐를 만큼의 수많은 말들을 꾸역꾸역 담아냈다. 반들거리는 금빛 의자의 손잡이 위, 힘없이 늙은 손이 바들바들 떨리었다. 감히 자신의 앞에서 저토록 태연한 이질적인 존재를 어떻게든 붙잡고 싶은 걸 가까스로 참아내는 눈치였다. “폐하, 내기를 하나 할까요?” 키스 C. 해밀턴은 저 탐욕스런 속내를 맞춰주면서 자신이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을 기다렸다는 듯 꺼내었다. 아마 저 지저분한 늙은이의 시선에서 가능한 한 빨리 벗어났으면 했기 때문일 것이다. “내, 내기? 내기라니, 무슨 내기 말이냐?” 국왕의 몸이 휙, 앞으로 튀어나가듯 기울었다. “제가 이 곳에 온 이유가 ..
옛날 옛날에 아주 심술궂은 마음씨를 가진 마녀가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마녀는 깊은 숲속에서 새빨간 장미와 마주쳤습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장미구나…!" 마녀가 손을 뻗자 새빨간 장미는 소리쳤습니다. -안돼요, 마녀님! 제게는 날카로운 가시가 있어요! 허나 장미의 말을 듣지 못한 마녀는 그만 가시에 찔리고 말았습니다. 아야! 이런 못된 장미 같으니! 마녀가 손가락을 움켜쥐고 새빨간 장미에게 소리쳤습니다. "네가 아름다운 겉모습으로 날 속였구나! 앞으로 널 돌보아주는 이가 없도록 네 가시에 저주를 걸 테다! 이곳에 나는 장미 가시에 찔리면 영원한 잠에 빠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 할 것이다!" 마녀는 숲과 마을에 목소리가 다 들리도록 아주 큰소리로 말했습니다. 어찌나 목소리가 컸는지 마을 사람들과 숲속의..
"… 저, 제 글을 써,볼까 생각 중 이에요." 여러 번 깜빡이던 속눈썹아래 그림자가 드리었다. 한델과 키스가 앉아있던 창가자리에 햇빛이 가득 들어찼기 때문이다. 음식이 반 정도 남은 새하얀 접시가 대신 대답이라도 하듯 반짝반짝 빛났다. 다른 건 몰라도 키스 앞에서 펜을 잡는 것만은 여간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던 한델인데…, 나눠 잡은 수첩 한 글자, 단어, 문장을 눌러쓰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그러던 한델이 둘만의 속삭이는 이야기에 멈추지 않고 작가로서의 삶을 새로이 시작한다 말한다. 키스는 나이프와 포크를 쥔 양 팔을 느리게 내려놓았다. "행사 초대…도, 이제 거절할 생각이에요. … … 키스, 옆에… 자신, 있게 서 있을 만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 한델, 글 쓰는 거, 힘들어하지..
-사라진 너와 나의 오후는 어디로 갔나.- 창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다. 학교의 돌담은 그 벌어진 틈새에 습기를 머금었는지 오래된 흙냄새와 먼지 냄새를 풍겼다. 어두운 오후, 음악실로 이어진 복도의 풍경은 바깥과 구분이 없는 어두운 오후였다. “…비 오는 날은 연습하기 싫은데.” 사람도 몇 없는 합창부를 위해 학교에서 담당 악단을 꾸려줄 리 만무하지. 때마침 들어온 심포니가의 학생은 여러모로 쓸모가 많다는 얘기다. 이러려고 들고 온 플루트는 아니지만, 선생님의 간곡한 부탁을 거절할 만한 이유도 딱히 없으니… 이렇게 혼자서 음악실의 문 맞은편, 애꿎은 창가만 노려보고 있는 거다. “…에휴.” 영 마음에 드는 상황은 아닌지라 한숨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문을 열고, 문을 닫았다. …시간이 얼마나..